본문 바로가기

지식&정보

정액 속의 정자

 동물학자들은 오랫동안 혈액의 혈장을 단순히 적혈구와 백혈구를 운반하는 운반체로서만 인식하여 왔다. 그러나 파스퇴르와 다른 생물학자들은 혈청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어떤 물질이 인간의 매우 복잡한 면역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같은 맥락에서 정액은 정자를 수송하는 운반체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정액의 양과 농도가 종마다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정액 속에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칠면조 수컷은 약 16억 개의 정자를 지닌 약 0.22ml의 정액을 사정한다. 그러나 돼지 수컷은 약 1,000억 개의 정자를 갖고 있는 0.5l의 정액을 사정한다. 바꿔 말하면 돼지의 각 정자는 약 5마이크로리터의 정액 속에서 헤엄쳐 움직이는 반면에, 칠면조의 각 정자는 약 0.0001마이크로리터 속에서 헤엄쳐 움직인다.

 황소, 숫양, 수퇘지를 포함한 가축의 정액의 성분은 포유동물 생식 생리학자에 의해 규명되었다. 이러한 정자 구성성분의 변이에 대한 해석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정액은 정자를 보호하고 정자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일종의 안식처라고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정액의 다른 생리학적 기능에 대한 가능성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즉 정액이 정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암컷의 생식 기관의 기능을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정액 속의 물질로 인해 암컷의 수란관 속에서 정자의 운동이 활발해지거나 암컷의 배란 속도가 빨라지거나 또는 수정의 확률이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정을 위한 정자의 경쟁력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좋은 예로써 집파리를 들 수 있는데 정액이 여러 화합물의 혼합물로 되어 있다. 이 화합물 중 어떤 것은 암컷의 몸속에 있는 물질과 매우 유사하여 암컷의 배란을 유도하기도 한다. 암컷이 더 일찍이 알을 낳도록 유도함으로써 수컷은 암컷이 자기의 정자를 사용하여 수정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액 속에 강력한 유도 물질을 갖고 있는 돌연변이 파리를 생각해보자. 암컷을 빠른 시간 안에 알을 낳도록 유도할 수 없는 수컷에 비해 강력한 유도 물질을 갖고 있는 수컷은 더 많은 수의 자신의 새끼를 낳게 할 수 있다. 특히 암컷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하기 시작했을 경우 수컷이 암컷의 배란을 촉진시킬 수 있는 이점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집파리의 정액 속에 있는 두번쨰 종류의 화학 물질은 암컷으로 하여금 교미를 기피하도록 만든다. 성욕을 감퇴시키는 항최음제는 여러 곤충과 뱀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종에서 이 물질은 암컷의 성욕을 단지 지연시키지만 집파리의 경우 그 효과는 매우 극적이다. 즉 암컷을 평생 동안 섹스를 못하게 함으로써 수컷이 암컷의 모든 알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찮은 이 곤충이 아주 작은 몸속에서 이와 같이 경이로운 생식 과정을 수행하는 현상을 볼 때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동물학적으로 최상의 고품질 정액이란 암컷의 수란관 속에 저장된 다른 수컷 경쟁자의 정자를 무능력하게 만들거나 죽일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이트만의 초파리 실험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러 종에서 암컷과 마지막으로 교미한 수컷이 대부분의 난자를 수정시킨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초파리 암컷은 교미를 자주 할수록 더 빨리 죽게 된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수명 단축 현상이 알을 낳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수컷의 경우 빈번한 교미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지는 않기 때문에 난자를 생산하는 것이 정자를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희생과 손실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하였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암컷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인은 알을 낳는 것보다는 수정 과정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정을 일으키는 정액의 성분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했던 스팔란짜니처럼 많은 동물학자들은 암컷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것이 정자인지 아니면 정액인지를 조사하였다. 운이 좋게도 동물학자들은 정자 없이 정액만을 생산하는 돌연변이 초파리 종에서 이 돌연변이체 수컷과 교미하는 암컷도 똑같이 수명이 단축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마지막으로 수정한 수컷 정자 우위와 암컷의 수명 단축이 상호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파리에서처럼 초파리 수컷은 자신의 정액 속에 암컷을 조정하는 물질을 전달하여 산란을 촉진하고, 암컷을 당분간 교미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수컷 경쟁자의 정자를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수컷의 정자를 무능력하게 만드는 물질은 거미의 독액과 화학적으로 유사하고 초파리 암컷에게도 독성을 나타내었다.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즉 암컷이 자신의 정자로 수정된 한 무리의 알을 낳는 한 암컷의 수명 단축은 문제가 안 된다. 초파리의 경우 이와 같은 성의 충돌 전쟁은 보통 수컷의 승리고 끝나게 된다.

 왜 암컷이 이와 같이 당하기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이유는 정액의 어떤 물질이 난자 형성을 촉진하는 암컷의 호르몬 작용을 모방하기 때문에, 암컷이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암ㅋ서에게 이러한 대책이 꼭 필요하다면 전화를 통해 암컷은 대응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책을 세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대책을 세움으로 해서 얻는 유리한 입장과 이익을 능가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응은 진화하지 않았다. 즉 진화적으로 볼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파리의 암컷과 수컷의 생식 특성의 공진화는 마치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 또 기생충과 숙주 사이의 관계처럼 치열하다 산타크루스의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라이스 교수는 초파리 암컷을 수컷과 공진화하지 못하도록 처리했다. 그 결과 수컷의 정자 전달 능력은 더욱 발전하여 암컷에게 더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정상 조건 하에서 암컷은 수컷의 이러한 정자 전달 방법에 반응하여 신속하게 진화하고 있지만, 암컷은 약간 뒤늦게 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실험에서 라이스 교수와 그의 대학원생 홀랜드는 정반대 되는 조건을 만들고 수컷과 암컷 초파리를 성적으로 암수 한 마리씩 교미하게 함으로써 성 선택의 기회를 빼앗아 버렸다. 이전 실험 조건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암컷과 수컷의 관심과 이익은 유사하였다. 예상한 대로 여러 세대가 지나자 정액은 암컷에게 점점 덜 위험해졌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암컷을 가급적 오랫동안 생식하도록 유지시키는 것은 수컷의 입장에서도 매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지식&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양한 정자 주입  (0) 2020.05.20
정자 살포와 체내 수정  (0) 2020.05.19
정액의 마술  (0) 2020.05.17
정자의 구조  (0) 2020.05.16
정자의 변이와 낭비  (0)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