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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

다윈의 성 선택설과 공작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거의 2000여 년 동안 정자 경쟁의 개념에 대한 중요성은 빛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를 발견하고 이들이 융합하여 배를 형성한다는 등의 생식에 대한 기본 개념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발전하였으므로 정자 경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없지는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컷던 생물학자인 다윈에 의해 정자 경쟁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진화가 일어나는 기작으로 자연 선택설을 설명하면서 다윈은 암수간의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윈이 가진 궁금증은 "만약 자연 선택이 자손을 많이 남긴 개체를 선호한다면 특정 개체에 불리하게 작용할 생물체의 형태와 행동 방식이 자연 선택에 의해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윈의 의문은 현란한 깃털 또는 수컷 새의 특이한 소리처럼 포식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거나 수사슴의 거대한 뿔처럼 지탱해 내기 매우 불편한 구조물들이 어떻게, 왜 진화할 수 있었는가였다.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는 '쥬노미아'라는 책에서 뿔이나 새의 며느리발톱 같은 특징들이 수컷이 암컷을 소유하기 위해 진화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에딘버러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의 다윈은 조부의 저서를 읽고는 비록 조부가 수컷이 갖는 경쟁적인 형질의 진화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사실에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수컷들 사이에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때문에 수컷은 암컷과 구분되는 형태적, 행동적 형질들을 갖지만 현란한 깃털이나 벼슬과 같은 수컷의 형질들이 수컷의 전투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윈은 이유는 모르지만 암컷은 미적 감각 능력을 소유하며 보다 매력적인 수컷과 교미하려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성적 차이의 지노하를 수컷 사이의 경쟁과 암컷에 의한 수컷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성적 선택의 개념으로 보았다. 이러한 다윈의 주장은 이후 무시되기도 하였지만 1930년대 진화생물학자들에 의해 자연 선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인정되었을 뿐 아니라, 1969년 기셀린으로부터 자연 선택의 가장 번뜩이는 설명이라고 극찬을 받게 되었다.

 

다윈 자신은 성선택의 중요성을 굳게 믿었다. 그는 성선택이 암수간의 차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임을 알았다. 아마도 20세기 후반 성선택설이 진화생물학의 주요 분야로 인정받은 사실을 다윈이 알았다면 매우 흐뭇해 했을 것이다. 다윈은 성선택설은 개체가 교미를 하는 시점까지만 작용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수컷들 사이의 싸움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며 암컷의 선택은 누구와 짝을 이룰 것인가 또는 누구와 교미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윈의 생각은 일단 암수 한쪽이 짝을 선택하면 그것으로 성선택은 종료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 후 대서양 양쪽에서 두 과학자 트리버스와 파커가 등장하기까지 거의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1960년대 후반 하버드대의 트리버스는 다윈의 성선택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다윈가 마찬가지로 트리버스도 성선택의 강도를 결정하는 요인과 함께 왜 일부 개체들은 다른 개체보다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번식의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성공한 개체들과 실패한 개체들 사이에 격차가 클수록 성선택의 강도는 크다. 트리버스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자손을 생산하고 양육하는 데 소모되는 노력의 양, 즉 어버이의 투자가 성선택의 강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트리버스의 독창성은 자손을 키우는 데 에너지를 적게 소모할 경우 번서식의 성공률에서 큰 변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암컷과 수컷 중에서 자손을 키우는 데 노력을 적기 들이는 쪽에서 성선택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의 수컷은 암컷에 비해 번식에 기울이는 에너지 투자가 적은데, 극단적인 경우 수컷은 한 방울의 정액만을 제공하는 정도이다. 세포 수준에서 보면 정자는 난자에 비해 매우 크기가 작다. 또한 암컷은 발생죽인 태아를 수개월 동안 몸 속에 지니고 살 뿐만 아니라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몇주에서 수년 동안 이들을 보살핀다. 자손을 돌보는 데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트리버스는 암컷과 수컷이 자식을 양육하는 데 들이는 노력은 종에 따라 차이가 있음과 이것이 종종 암수의 형태상의 성적 이형의 라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는 새끼 양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됨에 따라 이성들은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따라서 가용한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더욱 맹렬히 경쟁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주장은 같은 수의 암수가 존재하는 공작 집단에서 아주 극명하게 나타난다. 암수의 깃털 모양과 행동은 새끼 양육에 대한 투자 양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수컷 공작은 수백만 마리의 정자를 제공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암컷 공작은 알을 생산하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할 뿐아니라 알이 부화된 후에도 몇 주 동안이나 양육한다. 암컷은 일단 몸 속에 정액이 들어오면 사랑 게임을 끝내고는 수컷을 떠나 새끼를 양육하기 위한 장소를 찾는다. 반면에 수컷은 사정이 끝난 후 몇 분도 되지 않아 다시 사정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된다. 수컷은 가족을 부양하지 않기 때문에 번석기 내내 다시 교미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적으로 왕성한 수컷의 수는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암컷보다 많아지고 자연스레 수컷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받아줄 제한된 수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생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쟁 시장 속에서 주가가 높아진 암컷에게 누구와 교미할 것인지를 선택할 선택권이 부여된다. 그 결과 모든 암컷은 몸 속에 정자를 받아 자손을 생산할 수 있지만 수컷의 번식 성공률은 천차만별이 된다. 가장 공격적이거나 매력적인 수컷은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공작들은 번식에 실패한다. 수컷 사이의 경쟁과 암컷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원칙은 싸워서 이기거나, 암컷에게 매력적인 수컷이 되어야 유리하므로 공작새의 성적 이형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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