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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

정자 경쟁 이론 연구

트리버스가 성선택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켜 나갈 무렵 현재 리버풀대학교에 있는 파커 교수는 정자 경쟁이라는 성선택의 특별한 측면을 연구하고 있었다. 브리스톨대학교의 학부 시절 파커는 당시 유명한 곤충학자였던 힌톤의 지도하에 노랑 똥파리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파커는 힌톤 교수가 지도하는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1년 간의 지루한 연구 끝에 파커는 무엇인가 뜻있는 업적을 남기려면 특별한 의문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몇 달 동안 쇠똥 냄새를 맡으며 관찰한 끝에 수컷 똥파리들 사이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성선택의 문제, 그중에서도 수컷 사이의 경쟁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로 했다. 

 

교미할 준비가 된 암컷 똥파리가 쇠똥에 날아와 앉고 쇠똥 위에 알을 낳을 준비를 마친다. 금방 어떤 수컷이 날아와 암컷 위에 올라타 교미를 한다. 그 수컷이 일을 끝내기도 전에 더 큰 수컷이 날아와 둘 위에 올라타서는 수컷을 떼어내 쫓아내고 암컷과 교미한다 이러한 장면은 그가 관찰한 신선한 쇠똥에서 계속 이어졌다. 우리들도 한여름, 밖에 나가면 암컷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하는 똥파리를 쉽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파커는 한 번의 번식 주기에 두 마리의 수컷 한 마리의 암컷과 교미하면 두 수컷들은 교미가 끝난 후에도 그들의 정자들은 암컷의 생식 수관 속에서 경쟁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정자 경쟁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원래 1937년 윈지(Otto Winge)가 관상용 열대어인 구피를 관찰한 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파커는 정자 경쟁의 진화적 중요성을 처음으로 깨닫고는 이를 난자를 수정시키기 위한 서로 다른 수컷들의 정자 사이의 경쟁으로 규정하였다.

 

다윈이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커는 수정을 성취하기 위한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 다윈이 배우자를 얻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반면 파커는 그 수컷이 암컷의 난자를 수정시키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정자들이 암컷의 생식수관 속에서도 경쟁한다면 성선택은 수정의 순간까지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성선택이 사정하는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진화적 관점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파커는 정자 경쟁이라는 개념의 초석을 세웠다. 파커의 주장의 핵심은 만일 암컷이 여러 마리의 수컷과 교미한다면 성선택은 다수의 난자를 수정시킨 수컷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수컷은 더 빠르고 활발한 정자 또는 경쟁자이 정자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정자를 암컷의 몸속에 많이 넣을수록 수정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 경쟁에서 정자가 이기기 위한 방법이 바로 정자 경쟁 연구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진화에 대한 파커의 견해는 윌리암스와 메이나드 스미스 등의 연구와 뿌리를 같이 하는 데 경쟁은 종 또는 군집 수준보다는 개체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체 수준에서 경쟁이 작용한다는 견해는 1975년 윌슨이 저술한 '사회생물학'이라는 책과 다음 해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각광을 받게 된다.

 

정자 경쟁에 대한 파커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암시는 번식이란 암수가 벌이는 협동적인 공동 사업과는 거리가 먼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하여 암수 각각이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대신 그에 따르는 대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벌이는 각개약진이라는 것이다. 간혹 암수의 이익이 맞아떨어질 경우 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의 배우자를 바꾸고서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의 갈등이며 암수 사이의 투쟁은 최선을 다해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냄으로써 이기적인 유전적 이득을 얻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암수 각각에서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이기적인 태도는 번식이 갖는 다양한 행동학적, 생리학적, 해부학적 측면의 원동력이 된다.

 

흥미롭게도 파커는 암수 사이의 경쟁보다는 수컷 간의 경쟁에 관심이 많았다. 정자 경쟁에 대해 파커가 생각한 기본적인 관점은 정자 경쟁이 수컷에게 반대되는 경쟁 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성적 선택은 다른 수컷과 교미한 암컷과 새로이 교미한 수컷에게 유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교미한 암컷이 다른 수컷과 교미하더라도 수정되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는 수컷에게 유리하다. 많은 수의 암컷과 수정을 보장받은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암컷이 부정을 저지를 경우 수컷은 번식의 성공률이 낮아지는 대가를 치른다.

 

정자 경쟁에 의해 파생되는 극심한 선택압의 결과는 수컷의 번식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형질의 진화로 나타난다.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무기들의 경쟁이다. 가령 많은 양의 정액을 생산할 수 있는 특징을 수컷이 진화시키면 이로 인해 번식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자신의 부성을 보존하기 위해 예를 들어 암컷이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대가를 치른다. 또한 이러한 방지 행동이 효과적일 경우 암컷들에게는 이를 속이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는 따위의 역선택이 작용한다.

 

정자 경쟁의 개념의 원조인 파커는 재즈 음악가로, 투계 육종가로 활동하는 등 다재다능한 능력을 지녔다. 파커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뤄진 그의 생각인 이 분야의 후속 연구에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 간 자신의 이론적 기초를 확장하였으며, 자신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이론적 구조를 확립하였다. 해가 갈수록 교미 후 일어나는 수컷들 간의 경쟁에 관한 미묘하고 복잡한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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