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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

정자 저장 장소의 선택

 수컷은 정자를 생산하는 기관 외에도, 결정적인 순간까지 이 정자를 저장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포유동물 수컷이 교미할 때 두 군데 저장소에서 정자가 나오는데 그곳은 수정관과 부정소의 말단부이다. 정소와 마찬가지로 부정소의 상대적 크기도 정자 경쟁의 정도를 반영한다. 양에서 부정소의 말단부는 거대하고 1,260억 마리나 되는 꿈틀거리는 정자를 간직하므로, 비교적 짧은 생식 시기 동안의 일이기는 하지만, 숫양은 하루에 30~40번이나 사정할 수 있다. 침팬지와 사람을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정자 경쟁이 심한 침팬지 수컷의 부정소는 약 43억 마리의 정자를 간직하며 5시간 동안 시간마다 한 번씩 사정할 수 있으며, 그러고도 저장한 정자의 절반 정도만 소모한다. 이와는 달리 사람은 그 능력이 훨씬 제한되어 있어서 24시간 동안에 6번 사정할 수 있으나, 6번 사정하고 나면 부정소는 텅 비게 된다.

 역사적으로 정소는 남성 생식 기관처럼 기능의 상징이 되어 왔으나 부정소는 거의 무시되어 왔다. 이는 아마도 부정소가 정소 바깥에 붙어 있는 부차적인 기관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소가 정소 바로 옆에 붙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이나 포유동물에서 정소가 몸 밖의 음낭 속에 매달려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정소는 원래 몸속에 위치하지만 어릴 때 뒤쪽으로 이동하여 사춘기가 되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동물이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으며 코끼리, 고슴도치, 고래, 물개 등은 조류나 다른 동물처럼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일부 포유동물은 자칫 다치기 쉽게 정소가 몸 밖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에게는 수수께끼였다. 정소의 온도가 낮아야 양질의 정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통상적인 설명이었다. 이는 사실로서 의사들이 소년의 정소가 밖으로 나와 있는지를 항상 검사하는 이유가 된다. 5살이 되도록 정소가 몸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정자 형성이 저해되어 불임이 되며, 정소암의 발생률도 증가한다.

 정소의 위치는 단순히 몸 안이냐, 몸 밖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포유동물을 정소의 위치에 따라 6가지로 분류한다. 코끼리 형은 정소가 몸 안 깊숙이 신장 부근에 위치한다. 사람은 양 형으로 몸 밖의 음낭에 들어 있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이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한가지는 버밍엄의 사회체제연구소에 있는 챈스가 제안한 것으로서, '두들겨 패기 가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격렬한 운동을 할 때 몸속의 요동으로 생기는 심한 압력 변화가 정관의 내용물을 강제로 밖으로 내보낼 것이므로, 사람처럼 달리고 뛰는 동물에서는 체외 정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요동이 문제가 된다면 괄약근이라는 가장 간단한 진화적 해결책을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다른 한 가지 가설은 이스라엘의 생물학자 자하비와 워싱턴대학교의 프리만이 제안한 것으로서, 음낭 속의 정소가 신선하게 유지되면 정자가 불량한 환경 조건에서도 견디도록 단련되고, 나중에 질이라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될 때 보다 경쟁적으로 임무 수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정자 단련 가설'은 정자의 질과 양 사잉의 조정을 예측하므로 체내에 정소를 가지는 종은 질은 낮지만 양이 많은 정자를, 그리고 음낭 속에 정소가 들어 있는 종은 소량이지만 잘 '단련'되어 더 경쟁력이 있는 정자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정소는 교미 체제의 증언이자 남성 욕망의 상징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정소는 또한 돌연 변이의 화약고가 되므로, 이 때문에 쇼트는 신선한 생식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춘기 이후부터 정소는 세포 분열의 용광로가 되어, 날마다 수십억 개의 정자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왕성한 세포 활동의 결과 산소라디칼과 같은 대사적 독소가 만들어지고, 이 독소가 정자 생산 세포의 DNA에 해롭게 작용하여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정소의 돌연변이율은 매우 높아서 정소를 낮은 온도로 유지하는 것이 유전적 손상을 줄이는 것은 틀림없다. 여자는 이렇나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 난자의 돌연변이율은 정자의 경우보다 낮으므로, 제5장에서 알게 되겠지만 난자의 DNA는 이의 소유자가 아직 태아 시기일 때 이미 비활동 상태로 휴면기에 들어가서 배란이 일어날 때까지 그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베드포드는 선택의 표적이 정소가 아니라 부정소라는 다른 견해를 옹호하였으며, 저장된 정자는 시원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수정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람에 있어 음낭의 온도는 복부 안쪽보다 4도에서 5도 정도 낮다. 토끼와 쥐를 이용한 기발한 실험으로 낮은 온도에서 정자 저장의 중요성이 증명되었다. 음낭을 수술하여 부정소를 정소로부터 분리한 다음, 정소는 음낭에 남겨두고 부정소만을 복강에 다시 넣어주었다. 3주 후에 관찰한 결과는 놀라웠다. 정소에서 정상적으로 정자가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된 정자수는 줄어들었는데, 이는 아마도 부정소가 높은 온도에 있음으로 해서 정자의 성숙, 이동 및 저장이 저해되었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이와 같은 증거를 바탕으로 베드포드는 부정소가 외부 정소의 진화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제안하였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코끼리와 고슴도치 같은 동물에서처럼 몸의 가장 깊숙한 체온이 높은 데에서도 정자는 분명히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자는 시원한 곳에 위치하여야만 성숙과 저장이 가능하다. 결국 바위너구리, 코끼리와 같이 내부 정소를 지니는 동물일지라도 부정소는 체표면 근처의 시원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량의 정자를 항상 필요로 하는 동물의 경우 외부에 위치한 부정소가 유리하게 선택되었을 것이라고 베드포드는 주장하고 있다. 또한 진화 과정에 정소가 부정소와 함께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음낭을 가지고 있는 포유류의 정소는 낮은 온도에서 정자를 생산하도록 진화되었고, 이에 수반될 수 있는 문제들은 도태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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